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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진통제, 그리고 가장 위험한 — 오피오이드의 역사

연세편한재활의학과의원 · 홍진오 원장  |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지난 '비마약성 진통제의 시대' 글에서 제가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의 그늘을 잠깐 언급했더니, 한 분이 물으셨어요. "원장님, 그 마약성 진통제라는 건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예요?"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이 약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써 온, 가장 오래된 진통제 중 하나거든요. 오늘은 통증 의사로서, '통증과 중독' 사이에서 인류가 벌여 온 이 오래된 씨름의 역사를 들려드릴게요.

먼저 톤을 정해두고 갈게요. 오피오이드는 '악마의 약'이 아닙니다. 동시에 '그냥 좋은 약'도 아니에요. 이건 없어서는 안 될 축복이자, 다루기 가장 어려운 양날의 검입니다. 이 양면을 이해하는 데 역사만큼 좋은 선생이 없어요.

수천 년 전부터 — 양귀비의 눈물

이야기는 예쁜 꽃 한 송이에서 시작합니다. 바로 양귀비예요. 이 꽃의 덜 익은 열매에 상처를 내면 나오는 즙을 말린 것이 아편입니다. 놀랍게도 고대 수메르인은 양귀비를 '기쁨의 식물'이라 불렀고, 이집트·그리스·로마 사람들도 통증과 불면에 아편을 썼어요. 인류는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이 꽃으로 고통을 달랜 셈입니다.

오랫동안 아편은 온갖 병에 쓰이는 만능약처럼 여겨졌어요. 16~17세기 유럽에선 아편을 술에 녹인 '아편팅크(로더넘)'가 기침·설사·통증에 널리 처방됐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사람들은 어렴풋이 알았어요. 이게 고통은 잘 잡지만, 끊기 어렵고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을요.

순수한 성분을 뽑아내다 — 모르핀의 등장

그러다 과학이 한 걸음 나아갑니다. 1800년대 초, 독일의 한 약사(제르튀르너)가 아편에서 통증을 잡는 핵심 성분만 순수하게 뽑아내는 데 성공했어요. 그는 이 물질에 그리스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따 '모르핀'이라 붙였습니다. 통증을 잡고 꿈결 같은 느낌을 준다는 뜻이었죠. 인류 최초로 식물에서 순수한 약 성분을 분리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주사기가 발명(19세기 중반)되면서 모르핀은 더 강력하고 편리해졌어요. 문제는 그만큼 위험해졌다는 겁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 부상병들에게 모르핀을 대량으로 쓴 뒤, 수많은 병사가 중독되어 '병사의 병(soldier's disease)'이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강력한 진통이라는 빛과, 중독이라는 그림자가 처음으로 대규모로 함께 드러난 거죠.

고대~중세

양귀비·아편 — 인류 최초의 진통제. 수메르 '기쁨의 식물', 이후 '아편팅크'로 널리 사용.

1800년대 초

모르핀 분리(제르튀르너) — 아편에서 순수 성분 추출. 이후 주사기로 강력·편리해짐.

1898

헤로인 — 바이엘이 '중독 없는 안전한 약'이라며 기침약으로 판매(이후 정반대로 밝혀짐).

20세기

옥시코돈·메타돈·펜타닐 — 더 세거나 더 정교한 합성 오피오이드 등장. 펜타닐은 극소량으로 치명적.

1990~2000년대

현대 오피오이드 위기 — "중독은 드물다"는 믿음 + 공격적 마케팅 → 처방 폭증 → 대규모 중독·사망.

'안전하다'던 약의 배신 — 헤로인의 아이러니

여기서 역사의 가장 씁쓸한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모르핀보다 안전한 약"을 찾았어요. 그래서 1898년, 한 유명 제약회사(바이엘)가 모르핀을 변형한 새 약을 '중독 없는 기침약·모르핀 대체제'라며 자신 있게 판매했습니다. 그 약의 이름이 바로 '헤로인'이에요. 결과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헤로인은 모르핀보다 오히려 더 중독적이었고, 훗날 최악의 마약이 됐죠.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앞선 칼럼들이 떠올라요. '루닛' 글에서 "어제의 최첨단이 오늘의 기본", 삼천당 글에서 "5조원 vs 508억"… 그리고 여기, 100여 년 전 "안전하다"던 약이 사실은 가장 위험했던 것. "이건 안전하다"는 말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는 교훈은 의학의 역사에서 몇 번이고 반복됩니다.

더 세고, 더 정교하게 — 합성 오피오이드

20세기 들어 과학은 자연의 아편을 넘어 실험실에서 오피오이드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옥시코돈·하이드로코돈 같은 약, 중독 치료에도 쓰이는 메타돈, 그리고 펜타닐이 등장합니다. 특히 펜타닐은 수술·중증 통증에 요긴한 강력한 약이지만, 극소량으로도 목숨을 앗아갈 만큼 세서, 오늘날 불법 유통되며 수많은 목숨을 위협하는 물질이 됐어요.

진자는 양쪽으로 흔들렸습니다

흥미로운 건, 의료계의 태도가 시계추처럼 오갔다는 점이에요. 한때는 중독이 무서워 정작 필요한 환자(말기 암 등)에게도 진통제를 아껴 고통 속에 두는 '과소 치료'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암 환자의 통증엔 단계적으로 오피오이드를 제대로 쓰라는 지침을 내놓았죠. 이건 옳은 방향이었어요. 암성 통증에 오피오이드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진자가 반대편으로 너무 크게 넘어갔습니다. 1990년대, "오피오이드를 써도 중독은 드물다"는 주장(사실 근거가 빈약한 짧은 보고가 크게 과장 인용된 것)이 퍼지고, 여기에 일부 제약사의 공격적 마케팅이 더해지면서, 급성·말기 통증을 넘어 거의 모든 통증에 오피오이드가 쏟아졌어요. 그 결과가 미국을 덮친 '오피오이드 위기'입니다. 처방약에서 시작해 헤로인, 다시 불법 펜타닐로 물결이 이어지며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관련 회사들은 거대한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오피오이드의 역사는,

'고통을 없애려는 열망'과 '중독의 덫' 사이

인류의 5천 년 줄다리기입니다."

그래서, 통증 의사로서 드리는 말

이 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오피오이드는 나쁘다"가 아니에요. 훨씬 균형 잡힌 이야기입니다.

핵심 — 약이 문제가 아니라 '착각'이 문제였습니다

오피오이드는 암 통증·말기 완화·수술 후 심한 통증에는 지금도 없어서는 안 될 약입니다. 무서워서 필요한 환자에게 안 쓰는 것도 잘못이에요. 문제는 약 자체가 아니라, "이건 안전하다"는 착각과 오남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의 신중한 판단 아래 필요한 만큼, 필요한 기간만 쓰는 것 — 그게 이 강력한 약을 축복으로만 남기는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흔히 겪는 허리·목·어깨 같은 일상적 통증은 대개 오피오이드가 답이 아니에요. 이런 통증은 정확한 진단과 운동·재활, 생활습관 교정으로 다스리는 게 원칙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글에서 소개한 '중독 없는 비마약성 진통제'의 발전을 그렇게 반겼던 거예요. 인류가 5천 년 줄다리기 끝에, 드디어 '중독이라는 그림자 없는 진통'에 다가서고 있으니까요.

3줄 요약

오피오이드는 양귀비(아편) → 모르핀(1800년대) → 헤로인(1898) → 합성 오피오이드(펜타닐 등)로 이어진, 인류가 수천 년 써 온 가장 오래된 진통제입니다.

역사 내내 "이건 안전하다"던 약이 배신했고(헤로인, 그리고 1990년대 "중독은 드물다"는 착각), 그것이 현대 오피오이드 위기(수십만 사망)로 이어졌습니다.

교훈은 "오피오이드는 악"이 아니라, 암·수술 통증엔 꼭 필요하되 오남용은 위험하다는 것. 일상 통증은 진단·운동·재활이 먼저이고, 그래서 비마약성 진통제의 발전이 반갑습니다.

정리하자면, 오피오이드의 역사는 고통을 없애려는 인류의 열망과 중독이라는 덫 사이의 5천 년 줄다리기입니다. 양귀비에서 모르핀, 헤로인, 펜타닐로 이어지며 약은 점점 강력해졌고, 그때마다 "이번엔 안전하다"는 말이 되풀이됐다가 배신당했어요. 그 끝이 현대의 오피오이드 위기였고요. 하지만 이 약은 여전히 암과 수술 통증엔 없어선 안 될 축복입니다. 문제는 약이 아니라 착각과 오남용이었어요. 그러니 강력한 약일수록 더 신중히, 그리고 일상적 통증은 정확한 진단과 재활로 — 이것이 5천 년 역사가 통증 의사인 제게 가르쳐 준 결론입니다.

혹시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오래 드시고 계시다면, 겁먹으실 필요도 자책하실 필요도 없어요. 중요한 건 의사와 함께 '필요한 만큼,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본 원인을 함께 다스려 가면, 약에 덜 기대는 몸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허리·목·관절 등 만성 통증으로 진통제에 오래 의존하고 계시다면, 원인을 찾아 재활·운동으로 근본을 다스리는 방향을 함께 잡아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본 글은 원장의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건강 교양 칼럼이며, 특정 약물의 복용·중단을 권하는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지시에 따라 사용해야 하며, 임의 복용·중단·용량 조절은 위험합니다. 통증 치료와 약물은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다르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역사·사례 관련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한 개괄적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