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는 대체 얼마나 공부할까 — 연세대 의대를 '문 닫고' 나온 제가 겪은 6년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별내에서 진료하다 보면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께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아요. "원장님, 의대 가면 대체 공부를 얼마나 하는 거예요? 우리 애가 의대를 목표로 한다는데, 감이 안 잡혀서요." 마침 저는 연세대 의과대학을 나온 사람이라(그것도 솔직히 말하면 '문 닫고'—가장 아슬아슬한 성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제가 6년간 몸으로 겪은 그 살벌한 공부량을 솔직하게 들려드릴게요. 미화 없이, 겁도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요.
먼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의대 공부는 지능의 한계가 아니라,
엉덩이와 수면 부족을 견디는 힘을 시험하는 양입니다."
PART 1
일단, '양'부터 상상을 초월합니다
흔히 "머리가 좋아야 의대 가지"라고 하시죠. 반은 맞지만, 진짜 승부는 머리가 아니라 절대량을 버티는 엉덩이에서 갈립니다. 숫자로 보면 실감이 나요.
10만 장 +
본과 4년간 읽고 외워야 하는
강의 슬라이드(PPT)
성인 키 높이
매 학기 쌓이는
전공서적·강의록 두께
여기에 '야마'(또는 '족보')라 부르는, 선배들이 물려준 핵심 정리 자료를 더해야 해요. 교과서만 봐선 절대 시간이 안 되거든요. 매 학기, 성인 남성 키만큼 쌓인 책과 자료를 통째로 머리에 넣는 일이 6년간 반복됩니다.
PART 2
그리고 시험이 끝나질 않습니다
보통 대학은 한 학기에 중간·기말 두 번 보죠. 의대 본과는 다릅니다. 1~2주마다 '대학 기말고사 수준'의 시험을 봐요. 저의 본과 시절 한 주는 이랬습니다 —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주말 내내 밤을 새워 외운 뒤, 월요일 아침에 시험. 그리고 그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주 시험 범위가 시작됩니다. 숨 돌릴 틈이 없어요.
이게 몇 달도 아니고 몇 년을 이어집니다. 그래서 의대생들 사이엔 이런 말이 있어요. "여긴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안 무너지는 사람이 살아남는 곳이다." 저도 그 말을 매주 체감하며 버텼습니다.
PART 3
학년별 '지옥 지도'
6년이 다 같은 강도는 아니에요. 나름의 지형이 있습니다. 제가 겪은 순서대로 그려드릴게요.
의예과 1~2학년 숨 고르기
교양·기초과학(생물·화학)을 배우는, 일반 대학생과 비슷하거나 조금 여유로운 시기. 본과 지옥에 들어가기 전 유일하게 숨 쉬는 기간이에요. 이때 못 쉬면 나중에 정말 힘듭니다.
본과 1학년 — 기초의학 지옥의 시작·암기 정점
해부학·생리학·생화학·조직학·약리학. 인간 몸의 모든 뼈·근육·혈관·신경의 이름과 기능을 영어·의학용어로 통째로 외웁니다. 유급률이 가장 높은 시기. 저도 해부학 실습실에서 밤을 지새운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본과 2학년 — 임상의학 양의 정점
1학년에 배운 '정상인 몸' 위에, 이제 수천 가지 질병과 치료법을 얹습니다.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정신과… 분량이 가장 방대하고, 매주 시험 압박이 극에 달하는 때예요.
본과 3~4학년 — 병원 실습(폴리클) + 국가고시 고3 이상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직접 실습(폴리클)을 돕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회진을 따라다니고, 동시에 4학년엔 의사면허 국가고시 준비에 돌입해요. 실습+수험을 동시에 하는, 고3보다 더한 수험 생활입니다.
PART 4
연세의대만의 색깔 — '같이 살아남기'
여기서 제 모교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어요. 연세의대는 국내에서 앞서 절대평가(Pass/Non-pass)를 도입한 곳입니다. 학생끼리 등수로 짓밟는 극한 경쟁을 줄이려는 취지였어요.
경쟁이 줄어든다고 공부가 줄진 않아요 — 대신 '문화'가 생깁니다
유급(NP)을 면하려면 넘어야 할 절대 커트라인이 워낙 높아서, 공부량 자체는 전혀 줄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자료(야마)를 나누고, 밤새 같이 외우고, 다 같이 살아남으려는 끈끈한 문화가 생겨요. 저도 동기들과 족보를 나누고 서로 깨워가며 그 6년을 버텼습니다. 혼자였다면 절대 못 했을 거예요. "경쟁이 아니라 동료애로 버티는 곳" — 이게 제가 기억하는 연세의대입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까지 시키는 걸까
학부모님들이 여기까지 들으시면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 하실 수 있어요. 저도 그때는 그렇게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되고 나서야 알았어요. 이 방대한 양은 결국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라는 걸요.
제가 지금 진료실에서 환자분의 저린 손을 보고 '이건 몇 번 신경이 눌린 거구나' 하고 짚어낼 수 있는 건, 본과 1학년 때 죽도록 외운 그 신경 이름들 덕분입니다. 그때는 왜 외우나 싶던 것들이, 지금 누군가의 통증을 정확히 찾아내는 도구가 돼요. 대충 알아선 안 되는 일이라, 대충 안 가르치는 것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6년이 제게 준 진짜 선물은, 사실 지식이 아니라 '엉덩이의 힘'이었어요. 저는 머리가 특출난 사람이 아니에요(문 닫고 들어갔다니까요 ^^). 다만 무너지지 않고 매일 조금씩 끝까지 버티는 법을 그때 배웠습니다. 재능보다 꾸준함이 이긴다는 걸요. 이건 제가 지금 환자분들께 드리는 말과도 똑같아요 — "통증 치료도, 재활 운동도,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꾸준히가 이깁니다." 의대 6년이 제게 남긴 건 그 우직한 믿음이에요.
3줄 요약
연세대 의대 6년(예과2+본과4)의 공부량은 상상 초월 — 본과 4년간 강의 슬라이드 10만 장 +, 매 학기 성인 키 높이의 전공서적·야마(족보). "지능이 아니라 엉덩이와 수면 부족을 견디는 힘"을 시험하는 양입니다.
시험은 1~2주마다 대학 기말고사급으로 무한 반복. 학년별로는 본과1(기초의학·암기 정점·유급률 최고) → 본과2(임상·양의 정점) → 본과3~4(세브란스 실습+국가고시, 고3 이상).
연세의대는 절대평가(Pass/Non-pass)로 경쟁을 줄였지만 커트라인이 높아 공부량은 그대로 — 대신 자료를 나누며 '같이 살아남는' 끈끈한 문화. 이 방대함은 결국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고, 6년이 남긴 건 '재능보다 꾸준함'이라는 믿음이었어요.
정리하자면, 의대 6년의 공부량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10만 장의 슬라이드, 키 높이만큼의 책, 2주마다 돌아오는 시험, 유급의 공포, 실습과 국가고시가 겹치는 마지막 학년까지 — 머리보다 엉덩이로, 재능보다 버팀으로 통과하는 6년이에요. 하지만 그 가혹함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에 대충 배울 수 없는 것이었고, 그 시간이 지금 제가 여러분의 통증을 정확히 짚어내는 힘이 됐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6년은 제게 '재능보다 꾸준함이 이긴다'는 우직한 믿음을 남겼습니다. 혹시 의대를 꿈꾸는 자녀가 있으시다면, 성적만큼이나 이 '끝까지 버티는 힘'과 '왜 의사가 되려는가'라는 마음을 함께 준비시켜 주세요. 그 두 가지가 있다면, 그 아이는 좋은 의사가 될 겁니다.
혹시 지금 의대를 준비하며 지쳐 있는 학생이 이 글을 본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힘든 게 정상이고,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문 닫고 들어간 나도 결국 해냈으니, 너도 분명히 해낼 수 있어.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오늘 하루의 몫만 우직하게 채워가렴. 그거면 충분하단다.
별내에서 자녀의 진로나 건강, 혹은 온 가족의 통증·재활이 궁금하시면 편하게 나눠 주세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자 이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이나 전화(031-523-8988)로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본 글은 원장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담은 교육 칼럼입니다. 학사 과정·평가 제도·커리큘럼은 학교와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본문의 수치(슬라이드 장수 등)는 공부량을 직관적으로 전하기 위한 개괄적 표현입니다. 정확한 입시·학사 정보는 해당 대학의 공식 자료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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