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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사업하면 망하나요 — VC들이 꺼린다는데, 세상을 바꾼 회사는 다 교수가 만들었습니다

연세편한재활의학과의원 · 홍진오 원장  | 

안녕하세요.

통증과 대화하는 의사, 별내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입니다.

사실 저도 병원을 열어 운영하는, 작은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진료는 자신 있지만 경영은 서툴러 늘 배우는 중이죠. 그러다 바이오 회사 이야기를 몇 편 쓰면서 재미있는 속설을 하나 만났어요. "교수가 사업하면 망한다", "벤처투자자(VC)들은 교수 창업을 싫어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정말 그럴까? 궁금해서 국내외 사례를 한참 뒤져봤는데 — 결론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오늘 그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미리 말씀드릴게요. 저는 투자·경영 전문가가 아니고, 이 글은 특정 회사를 사라·팔라는 조언이 아닙니다. 회사·인물은 이해를 돕는 사례로만 언급해요. 이건 "전문가가 사업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저 같은 개원의에게도 남 일 같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PART 1

일단, 그 속설은 왜 생겼을까

"교수가 사업하면 망한다"는 말, 근거 없는 편견만은 아니에요. 실제로 VC들이 교수 창업을 조심스러워하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하나씩 보면 고개가 끄덕여져요.

1. 연구실 ≠ 시장. 논문에서 훌륭한 기술이 팔리는 제품이 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좋은 기술이면 당연히 팔리겠지"가 가장 흔한 착각이에요.

2. '논문 마인드'. 학자는 완벽·정밀·검증을 추구하죠. 그런데 사업은 때로 불완전해도 빠르게 결정하고 파는 감각이 필요해요. 이 둘이 자주 충돌합니다.

3. 다 쥐고 안 놓음. 자기 기술이라는 애착에 경영·지분·의사결정을 혼자 다 쥐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전문 경영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집니다.

4. 겸직의 딜레마. 교수직을 지키며 '한 발만' 담그면, 사활을 건 승부처에서 온전히 올인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국내 한 바이오 업계 분석은 "교수는 (연구·경영·책임을) 다 떠안고, VC는 개입을 못 하는 뒤틀린 구조"를 한국 바이오 창업의 고질병으로 꼽기도 했어요. 그러니 "교수 창업 조심" 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닙니다.

PART 2

그런데 반전 — 세상을 바꾼 회사는 다 교수가 만들었다

자, 여기서 이야기가 뒤집힙니다. 그 '망한다'는 교수들이… 사실 인류의 의학을 바꾼 회사들을 줄줄이 세웠거든요. 몇 개만 볼까요?

제넨텍 (Genentech) 바이오 산업의 시조

1976년, UCSF 교수 허버트 보이어가 공동창업. 바이오테크 산업 그 자체를 탄생시킨 전설적 회사입니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재조합으로 사람 인슐린을 만들었고, 훗날 로슈에 인수되며 초대박이 났어요.

모더나 · 그리고 밥 랭거 교수 창업의 대부

코로나 백신의 모더나는 MIT 교수 로버트 랭거가 공동창업했어요. 랭거 교수는 무려 40개가 넘는 회사를 세운 '교수 창업의 대부'입니다. 물론 그중엔 조용히 사라진 것도 많지만, 몇 개가 세상을 바꿨죠.

바이오엔테크 (BioNTech) 교수 부부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 백신을 만든 바이오엔테크는 독일 마인츠대 교수 부부(우구르 샤힌·외즐렘 튀레지)가 세운 회사예요. 제가 'mRNA' 글에서 다룬 그 기술로, 팬데믹에서 세계를 구했습니다.

어때요? "교수가 사업하면 망한다"는 말이 무색하죠. 바이오 산업의 역사 자체가, 사실은 연구실을 박차고 나온 교수들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속설은 반은 맞고 반은 완전히 틀린 셈이에요.

PART 3

그럼 성공과 실패를 가른 '한 끗'은?

여기가 오늘의 핵심이에요. 같은 교수 창업인데 왜 누구는 세상을 바꾸고 누구는 무너질까. 사례들을 비교해 보니 또렷한 패턴이 보였습니다.

비밀 하나 — '짝'을 이뤘는가

제넨텍의 탄생 일화가 압권이에요. 1976년, 28살의 젊은 투자자 로버트 스완슨이 보이어 교수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10분만 만나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금요일 오후 맥주를 앞에 두고 시작한 그 대화가 3시간을 넘겼고, 그 자리에서 제넨텍이 탄생했어요. 핵심은 이겁니다 — 보이어는 '과학'을, 스완슨은 '경영(CEO)'을 맡았습니다. 교수가 다 하려 들지 않고, 사업의 천재와 짝을 이룬 거예요.

"연구실의 천재 + 시장의 천재 —

이 조합이 제넨텍을, 바이오 산업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성공한 교수 창업들의 공통 문법이에요. 자기가 잘하는 것(과학)은 지키되, 모르는 것(경영)은 유능한 파트너에게 맡긴다. 반대로 "내 기술이니 내가 다 한다"며 혼자 짊어진 경우가 대개 위태로웠습니다.

비밀 둘 — '도박에 올인'했는가

국내 사례가 이걸 아프게 보여줍니다.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갈렸어요.

제넥신 — 죽다 살아난 교수 창업 생존·상장

포스텍 교수 성영철이 1999년 창업. 2005년 임상 실패로 직원을 내보내고 사업 중단 위기까지 갔지만, 버티며 기술을 개발해 여러 제약사에 기술이전하고 2009년 상장에 성공했어요. 한 방에 안 걸고, 위험을 나눈 겁니다.

헬릭스미스 — 한 임상에 걸었다가 3상 실패·추락

서울대 교수가 세운 유전자치료 회사(구 바이로메드). 큰 기대를 모았지만 2019년 당뇨병성신경증 임상 3상이 실패하며 주가가 고점 대비 크게 무너졌고, 잇단 유상증자 등 오너 리스크로 신뢰를 잃었습니다.

신라젠 — 진짜 과학, 그러나 3상 무용성

제가 앞서 다룬 회사죠(부산대 의대 교수 관련). 항암바이러스 '펙사벡'이라는 진짜 과학이었지만, 단일 임상 3상의 무용성 평가를 넘지 못하며 시총 2위까지 갔던 회사가 무너졌습니다.

보이시나요? 무너진 쪽은 '교수라서'가 아니라, 회사의 운명을 단 하나의 임상에 몽땅 건 도박이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알테오젠' 글에서 말한 '신약 도박(모 아니면 도)' vs '곡괭이 파는 플랫폼(위험 분산)'의 차이가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교수가 사업하면 망하나요?

답 — '교수라서' 망하는 게 아닙니다

망하는 진짜 이유는 ①경영을 혼자 다 쥐려 하고 ②회사 운명을 한 번의 도박에 거는 것이었어요. 이건 교수가 아니어도 누구나 실패하는 길입니다. 오히려 교수는 세상에 없던 기술을 가진, 최고의 창업 씨앗이에요. 다만 그 씨앗이 열매가 되려면 — 좋은 사업 파트너와 짝을 이루고, 자기 역할을 지키고, 한 방이 아니라 위험을 나눠야 합니다. 그러면 교수 창업은 세상을 바꿉니다. 실제로 바꿔 왔고요.

이 이야기가 저 같은 개원의에게도 남 일이 아니에요. 저도 진료(제 '과학')는 자신 있지만, 병원 경영·마케팅·노무는 서툴러요. 그럴 때 저는 혼자 다 하려 애쓰기보다,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는 걸 배웠습니다. 제가 늘 환자분께 "통증은 혼자 앓지 말고 전문가와 함께 풀자"고 말씀드리는 것처럼요.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모르는 것은 잘하는 이에게 맡기는 것 — 이게 교수 창업의 교훈이자, 사실 삶 전체의 지혜인 것 같아요.

3줄 요약

"교수가 사업하면 망한다·VC가 꺼린다"는 말엔 근거가 있어요 — 연구실≠시장, 논문 마인드, 경영을 다 쥐려 함, 겸직. 하지만 이건 절반의 진실입니다.

반전 — 제넨텍(보이어 UCSF 교수)·모더나(랭거 MIT 교수)·바이오엔테크(마인츠대 교수 부부)처럼 바이오 산업 자체가 교수들이 만든 것. 세상을 바꾼 회사는 대개 교수 손에서 나왔어요.

성패를 가른 건 '교수냐'가 아니라 — ①사업 파트너와 짝을 이뤘는가(제넨텍: 과학+CEO) ②한 임상에 올인하지 않고 위험을 나눴는가(제넥신 생존 vs 신라젠·헬릭스미스 추락). 결론: 교수라서 망하는 게 아니라, 혼자 다 하고 도박에 올인해서 망한다.

정리하자면, "교수가 사업하면 망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연구자가 시장을 얕보거나, 모든 걸 혼자 쥐거나, 회사 운명을 한 번의 임상에 걸면 정말 위태로워요. 하지만 바이오 산업의 역사가 증명하듯, 세상을 바꾼 회사들은 오히려 연구실을 나온 교수들이 만들었습니다. 그 차이는 '교수냐 아니냐'가 아니라, 좋은 파트너와 짝을 이뤄 역할을 나눴는가, 그리고 도박이 아니라 위험을 분산했는가에 있었어요. 그러니 전문가에게 사업이 독이 되느냐 약이 되느냐는, 결국 '혼자 다 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느냐에 달린 셈입니다. 자기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잘하는 이에게 맡기는 것 — 저는 이게 창업뿐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데도 똑같이 통하는 지혜라고 믿어요.

연구실의 천재가 시장에선 초보일 수 있고, 저 같은 의사가 경영에선 새내기일 수 있어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과 손잡는 용기예요. 오늘도 저는 제가 가장 잘하는 일 — 여러분의 통증 곁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이 글은 투자·경영 조언이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 나눔입니다. 진료차 오셨다가 건강·의료·바이오 뉴스가 궁금하시면 편하게 나눠 주세요. 저희는 평일 야간진료(화·목)와 주말 진료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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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연세편한재활의학과 홍진오 원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본 글은 원장의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교육 칼럼이며, 특정 종목·기업에 대한 투자 권유·추천이나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언급된 인물·기업·사례는 공개된 언론 보도와 자료를 참고한 개괄적 설명으로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으며, 질병의 진단·치료는 해당 전문의의 영역입니다.